안녕 / 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 갤러리 WE / 서울 / 2019
안녕 / 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 갤러리 WE / 서울 / 2019
안 녕


서울예술창의교육센터 갤러리 WE

2019. 2.07 - 2.28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다. 내 안의 한 사람은 한때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그는 주로 숲이나 산 따위를 알록달록한 색으로 그렸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가 그림에 매료되었던 이유를 거칠게 요약할 수도 있겠다. 시간이 난다면 그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자연을 향해 이글거렸던 고흐의 감정, 처음 눈을 뜨는 갓난아이처럼 세상을 응시했던 세잔의 시선, 대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자코메티의 집요한 의지, 이렇게 세 가지 재료를 소중히 채집한 후에 그것들을 고추장에 넣고 비벼서 자기 입맛에 맞는 요리를 캔버스에 남겼다.



 현재 그는 더 이상 심심하거나 할 일이 없어도 뭔가를 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페인터로서의 열정과 야망은 어느 순간 그의 내면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림에 대한 내적 동기를 완전히 상실했다.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진행된 이유 없는 감정의 변화 혹은 상실이라고 보는 이도 있었으며, 일각에서는 그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으나 어쩐지 잘 안 되었고, 영혼 없는 자기복제의 가능성들이 보이자 주저 없이 절필을 결심했다는 설도 있었다. 이에 손사래를 치며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류 미술계가 찬양하는 것들이 그에게는 대체로 노잼이었고, 마땅히 동경해야할 판 자체가 애초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자기 포장에 속지 말라며 콧방귀를 뀌는 이들은 또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실은 그가 주요 공모전에서 떨어지기 일쑤였고, 소위 ‘미술계 메인스트림’에 머리털 한 올조차 기웃거리지 못했으며, 그냥 알록달록한 숲 그림이 컨템포러리 아트 씬에서 먹히리라 생각했던 것이 가당키나 하냐면서, 때문에 이 사회에서 미술 작가로서의 인정투쟁이 완벽하게 실패한 경험들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은퇴 선언을 하지 않고 떠나버려서 이유를 물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림이 그를 떠난 것인지, 그가 그림을 떠난 것인지.. 그와 가장 가까웠던 나는 ‘인생무상’ 이라는 말로 그를 해석하려고 한다. 인생 허무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인생에는 정해진 상(像)이 없다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문장을 빌리고 싶다. 불변하리라 믿었던 마음들도 언젠가 증발된다. 그는 그 증발을 뒤늦게 발견했고, 처음에는 자신이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채 어디론가 걷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분명 또 재미난 무언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끝이 있기에 또 다른 시작도 있는 법. 나는 그를 무한정 응원한다. 그가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어느 날 태연하게 돌아와 붓을 잡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어쨌든 현재는, 그 사람은 여기에 없다. 나는 ‘그 사람’의 잠정적 이별을 뒤늦게 기념하고 추모하는 전시를 열기로 했다. 그 사람이 그렸던 그림들을 오랜만에 꺼내본다. 한 번도 전시하지 못한 그림, 언젠가 그릴 목적으로 만들었을 빈 캔버스들, 완성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뭉개버린 그림들까지 모두 기념하기로 한다.


모두들 안녕.